1. 신체가 화목해야 만사가 조화롭다. 피아노 연주자의 두 손은 합심하여 사이좋게 건반을 두드리고, 첼로 연주자의 두 손은 역할을 나누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오른손과 왼손이 화목하지 못하면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오늘 전지가위로 곶감 꼭지를 잘라내던 중에 오른손이 왼 손가락을 하나 베었..
지리 상봉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고 엄천강에 물안개가 끼기 시작할 무렵이면 함양골짝 사람들은 너나없이 감을 깎아 걸기 시작한다. 그러면 옷을 벗은 감은 한 달이나 한 달 보름동안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하면서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콤한 곶감으로 바뀌는데, 이곳 사람들은 곶감을 접는 방식이 좀 별다르다. 마트에 ..
와이프를 바꿔야 한다. 오래 쓰다 보니 너덜너덜 해져서 헌 거 들어내고 새 거 끼워야 하는데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카센타에 가서 바꾸자니 생각치도 않은 비용이 들 거 같고 직접 하자니 자신이 없다. 실은 몇 달 전부터 시원찮았는데 조수석은 이제 아예 안 닦이고 운전석 것도 너덜너덜 고무가 완전히 떨어..
감을 오래 만지다 보니 감이 잡혀, 이제는 곶감 만드는 일이 그닥 어렵지 않다. 최근 수년간은 하늘이 심술을 부려 약간 당혹스럽긴 했지만, 이제는 감이 생기니 하늘이 부리는 변덕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곶감 농사 초창기 때엔 감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시설이 열악해서 고생했다. 말리는 건 덕장에서 말리면 되..
배가 살살 아파 아침 굶고 점심 건너뛰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아 배 아픈데 효험이 있다는 매실 한잔 마시고 버티다가 안되겠다 싶어 주사나 한방 맞으려고 병원에 갔었네요. 진찰하고 주사 한방 맞고 약 받아 집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집에 못가고 있습니다. 맹장염이라네요..
<용유담에 가면 용이 똬리를 틀고 앉았던 자리가 있는기라... 그래서 옛날 국민핵교 때 소풍가면 나는 꼭 그 자리에 않아서 도시락을 까 묵었제... 그 바위 모양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용이 똥을 싸서 그래 되었다는 전설도 있고...>이곳에서 태어나서 한 평생을 보내신 기평댁 할머니께서 기억 속의 그 자리..
시월엔 엄천강 물안개가 장관이다. 아침마당에 서서 돌담너머로 엄천강 물안개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저 그림같은 강둑길을 한번 걸어보리라 생각했는데 마침내 그 바램이 이루어졌다. 엄천 골짝 사람들과 지리산 엄천강 둘레길을 걷기로 날을 잡은 것이다. 엄천강을 따라 걷는 길은 이맘때가 가장 아름답다. 물론 봄..
“봉대 행님~감 깎기 전에 단풍놀이 한번 갑시더~” “그려~그려~ 날짜 한번 잡아봐바~” 지리 상봉에서부터 밀려 내려온 단풍이 사람들이 사는 산자락까지 물들이니 아무리 시골 사는 농투성이들이지만 울긋불긋한 자연에 느낌이 없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곶감 농사를 많이 하는 엄천골 농부들은 감 깎을 시기가 ..
사소한 일로, 정말 별거 아닌 일로 시작된 싸움이었습니다. 요즘같이 습도 높고 끈적끈적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아침에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궁시렁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나도 궁시렁 궁시렁 거렸는데 아내가 들었던 모양입니다.오후에 아내가 무슨 말끝..
지난 봄 복사꽃이 필 무렵이었다. 일개 소대 규모의 농부들이 농업경영 개선 교육을 받느라 한명씩 돌아가며 농업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토로하는데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귀농한지 몇 해 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얘기를 듣다보면 (아~ 저 얘기는 내가 처음 귀농해서 좌충우돌할 때 이야기랑 같구나~) (..
곶감농사 10년 만에 냉동 창고를 장만했다. 진작 했어야 하는 건데 그동안 냉동 창고가 없어서 본 손실을 생각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 하기사 십년 전 내가 이웃 어르신의 권유로 곶감 농사를 시작한 첫해엔 냉동 창고는 커녕 덕장도 없이 정자에 감을 걸었다. 곶감은 자연 건조 식품이니 바람이 다 알아서 해줄 거라 믿..
말이 씨가 된다더니 댓글이 씨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무심코 단 댓글이 씨가 되어 밤길을 비 맞으며 여섯 시간이나 걷게 된 일화다. 수년 전 이맘 때 지리산길 동호회 카페에 한 회원이 둘레길 후기를 올렸는데 마침 그게 지리산 둘레길 옆에 있는 우리 집을 지나는 구간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내가 살고 ..
흔히 동물들은 계절과 날씨 변화에 따라 움직일 거라 생각하지만, 별도의 내부 정보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생물학자들이 밝혀내었다 합니다. 서캐디언 리듬이라고 불리는 동물들의 독특한 생체리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베른트 하인리히’가 쓴 ‘동물들의 겨울나기’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동물들에게는..
민박 예약이 들어왔습니다. 추석연휴 일박이일. 외국인 단체 손님이네요. 홈페이지에 소개된 우리 집이 서양식 목조 주택이라 당연히 침대가 있을 줄 알았다 합니다. 침대 방은 없다 하니 자기네들끼리 한참 뭐라 뭐라 해쌓더니 그냥 노배드룸 오케이 하네요. 근데 지리산 골짝 마을 민박집을 외국인이 어떻게 알고 ..
어제 지인과 저녁 먹다가 귀농 10년 만에 농사 포기하고(때리 치우고) 공단에 취직했다는 사람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귀농인은 정말 타고난 농사꾼처럼 일을 잘했다 합니다. 손가락이 보통 사람 두 배로 굵고 힘도 좋아 일 하나는 누구보다도 잘하는 사람이었다네요. 고추도 많이 심고 감자랑 오미자 등등 복합영농..
올해처럼 더웠던 적이 있었나요? 지구 온난화는 학자들과 정치하는 사람들만의 이슈가 아니라 바로 우리 보통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뜨거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오면서 에어컨이 뭐 필요할까 하고 남 주고 왔습니다. 시골스럽게 산다고 신문도 끊고 TV도 거의 안보고 지냈습니다. 수년 전까지..
여름 성수기다. 펜션에 손님이 많이 오니 바빠졌다. 입추까지 많은 객실이 예약되었고 말복까지 이어질 추세다. 십수년전 귀농하고 집에 놀러오는 친척과 친구들을 위해 지은 사랑방을 늘려 펜션으로 운영 하고 있는데 남들 다 놀러가는 휴가철에 나는 놀러가지 못한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
십수년 전만 해도 귀농은 트랜드가 아니어서 2002년 2월 우리가족이 휴천 운서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주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살짝 묘했다.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댁 문간방을 빌려 초딩 아들 둘을 데리고 삼사십대 부부가 냄비에 수저만 가지고 와서 밥을 끓여먹고 있으니 다들 도시에서 망해서 내려온 줄 알..
“어이~ 출출한데 어탕국수나 한 그릇 할까?” 여름 휴가철을 맞아 마을 대청소 하는 날, 장정들은 예초기 메고 엄천강 마을길 따라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고, 할머니들은 낫으로 살구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칡덩굴을 걷어내며 한손 거드신다. 두어 시간 땀 흘린 보람이 있어 어지럽게 자란 풀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감이 제법 굵어지고 있다. 지난 봄 감나무 밭에 거름을 져다만 놓고 아직 못다 뿌린 것이 있어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밭에 갔더니, 윗밭에서 중촌 영감님 내외가 풀을 메다가 농부를 보고 웬일이냐고 하신다. 이제사 거름 준다는 말이 안 나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거름 주는 가벼?” 하신다. “네~” “이제?” ..